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자몽살구클럽 (책임감, 어린시절 상처, 연대) 책리뷰

슬립케어연구소 2026. 7. 7. 08:00

목차


     

     

    퇴근하고 나서도 머릿속이 비워지질 않는 날이 있습니다. 딱히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하루를 버텼다는 느낌만 남는 그런 날이요. 그런 밤에 우연히 펼쳐 든 책이 한로로의 소설 《자몽살구클럽》이었습니다. '자살 클럽'이라는 부제가 붙은 중학생들의 이야기인데,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게 청소년 소설인데, 왜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을까요.



    책임감에 짓눌린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

    소설 속 하태수는 겉으로 보면 완벽한 아이입니다. 정교회장, 밝고 쾌활한 성격,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장 성심껏 들어주는 어른스러운 태도.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픔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합니다. 어머니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소설 중간에 스치듯 드러날 뿐이죠. 마음 밖으로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이 결국 그를 잡아먹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솔직히 뜨끔했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집에서 "괜찮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고 있으니까요. 30대 후반이 되고 나서 이상하게도 감정을 꺼내놓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20대엔 그래도 힘들면 힘들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말 자체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는 거겠죠.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정서 억제(Emotional Suppress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정서 억제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면서도 의식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기제를 말합니다. 단기적으로는 기능을 유지하게 해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체화 증상이나 관계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연구로 확인되어 있습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

    그러니까 태수의 비극은 단순히 나쁜 가정환경 때문만이 아닙니다. '나는 강해야 한다'는 역할 정체성이 그를 고립시킨 거라고 저는 봤습니다. 보현이가 어머니의 병원비를 혼자 감당하면서도 울음을 숨기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운 게 티 나지 않도록 이 세상이 모두 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대사가 소설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까지 숨기고 싶은 감정이 생기는 건 대부분 혼자서 너무 오래 버텼다는 신호입니다.

    작품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 독자에게 "저 나이 때 나는 뭘 느꼈더라"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를 묻는 거죠. 그 질문이 굉장히 불편하게 와 닿았습니다.

    • 정서 억제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나타납니다. 예민함, 무기력, 관계 회피가 대표적입니다.
    • 태수·보현이·소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다가, 클럽 안에서 처음으로 말을 꺼냅니다.
    • '죽고 싶다'기보다 '이 역할에서 잠깐 내려오고 싶다'는 감정이 이 작품의 핵심 정서입니다.
    요약: 책임감 뒤에 감정을 숨기는 삶은 청소년도, 30대도 마찬가지다. 자몽살구클럽은 그 고립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연대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의 의미

    자몽살구클럽의 설정은 꽤 특이합니다. 스스로 2주의 유예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 동안 서로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비밀 모임이니까요. 보현이를 위해 클럽원들이 함께 바닷가로 향하고, 보현이가 그곳에서 캠코더로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완성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다 같이 보고 나서 보현이는 삶을 이어가기로 선택합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주목한 건 영화 자체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 꿈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면,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의 꿈을 물어봐 주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다들 바쁘고, 만나면 근황 이야기, 현실 이야기를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뭐가 하고 싶어?"라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게 얼마나 큰 힘인지 아마 이 글 읽으시는 분들도 아실 겁니다.

    소설에서 유민이는 태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흙속에서 태수의 마지막 편지를 발견하고, 그 마음에 답하기 위해 노래를 씁니다.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으로부터 받는 정서적·실질적 도움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충분히 확보된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회복 탄력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 자료

    유민이가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도, 보현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결국 그 연결 덕분입니다. 반면 태수는 자기 아픔을 끝까지 혼자 안고 갔습니다. 이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소설을 덮고도 한참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하의 결말은 다소 열린 형태로 끝납니다. 아버지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하고 식칼을 든 채 음악실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소설이 멈추는데, 뒷이야기는 뮤직비디오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이게 처음엔 불완전하게 느껴졌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영리한 선택이라고 봤습니다. 소하의 이야기를 닫아버리지 않고 독자에게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이 아이가 어떻게 됐을지, 우리 주변에 지금도 이런 아이가 있지는 않은지를요.

    결국 이 소설이 전하는 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닙니다. '혼자 버티는 것보다 함께 버티는 것이 실제로 더 오래 가더라'는, 단순하지만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저도 그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함께'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하게 됩니다.

    요약: 연대는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누군가 내 꿈을 기억해 주는 것처럼 아주 작은 형태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몽살구클럽 소설은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나요?

    A. 청소년 소설이라는 분류에 선입견이 있으실 수 있는데, 오히려 30대 이상 독자에게 더 강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삶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분, 혹은 오래된 상처가 아직도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라면 특히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200페이지 분량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Q. 한로로 앨범과 소설을 꼭 같이 봐야 하나요?

    A. 소설만 읽어도 충분히 완결된 이야기이지만, 두 작품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앨범의 각 트랙이 소설 속 인물들의 시점과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은 뒤 음악을 들으면 가사 한 줄 한 줄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소하의 결말을 이어 받는 부분은 뮤직비디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 자살, 학대 같은 소재가 나오는데 읽기 힘들지 않나요?

    A. 소재 자체는 무겁지만 작품이 그것을 전시하거나 자극적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읽고 난 뒤 절망보다는 먹먹한 울림이 더 큽니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감정적으로 힘들 수 있으니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잠시 책을 내려놓는 것도 괜찮습니다.

     

    Q. 소하는 결말에서 어떻게 됐나요?

    A. 소설은 소하가 음악실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열린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이후 이야기는 한로로의 뮤직비디오에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이 아이의 이후를 상상하고 질문하게 만든 구조로 보입니다.

     

    결론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감성적인 청소년 소설이겠거니 했습니다. 예상 밖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이 아이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동시에 저 자신에 대한 질문도 꽤 많이 하게 됐습니다. 지금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꺼내고 있는가, 나 주변에 태수 같은 사람은 없는가 하는 것들이요.

    작품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클럽원 중 한 명은 끝내 살아남지 못했고, 소하의 결말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좋게 느껴지는 건, 살고 싶다는 마음을 주문처럼 외워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중학교 음악실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요. 소설까지 읽고 앨범을 다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분명히 다르게 들릴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95eGZjIR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