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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명소라고 하면 그리스 산토리니를 먼저 떠올리지 않으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코타키나발루의 탄중아루 해변 앞에 서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수평선, 바람, 그리고 그 속에서 저도 모르게 멈춰 선 제 자신.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이자 세계적인 해양 레저 관광지인 코타키나발루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이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이곳에서 처음 제대로 들었습니다.
세계 3대 석양, 탄중아루 해변에서 시간이 멈췄습니다
혹시 '세계 3대 석양'이라는 말, 그냥 관광 마케팅 문구 아닌가 싶으셨나요? 솔직히 저도 처음엔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탄중아루 해변에 직접 서보고 나서는 그 의심을 거뒀습니다.
코타키나발루는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석양 명소로 꼽힙니다. 이 도시는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로, 19세기 말 영국의 북보르네오 식민지 개발 거점으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인구 약 47만 명의 동말레이시아 최대 도시입니다. 도심 한쪽에는 1905년에 지어진 목재 구조물인 앳킨스 시계탑이 남아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폭격에서도 살아남은 이 건물은 코타키나발루 철도역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지역의 첫 관리자였던 프란시스 조지 앳킨스를 기리는 역사적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목부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가 오갔습니다. 노을이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자, 주변 대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석양은 빠르게 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순간을 충분히 감상하라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다 아래로 내려앉았습니다.
제가 직접 서 있었는데, 그 빛이 얼굴에 닿는 순간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2km 남짓한 해변 곳곳에서 친구와 연인이 추억을 쌓고 있었고, 저는 그 풍경 안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게 이 여행에서 제가 한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맹그로브 숲 속 반딧불이, 자연이 켜는 빛의 의미
밤에 강을 타고 들어가는 보트 투어, 사실 출발 전까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나나문 강줄기를 따라 보트로 이동하다 보면 도시의 불빛이 점점 사라지고, 맹그로브 숲이 어둠 속에서 윤곽만 남깁니다. 여기서 가이드가 조용히 보트 시동을 끄고 손전등으로 숲을 향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맹그로브(mangrove)란 열대·아열대 해안이나 하구의 기수(淡鹽水) 지역에 자라는 수목군락으로, 여기서는 반딧불이의 서식지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에 형성되는 독특한 생태 숲입니다.
반딧불이는 덥고 습한 환경에서만 활동합니다. 밤 기온 평균 20도 이상, 습도 80% 초과,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그날은 기적처럼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손전등 불빛을 암컷의 신호로 착각한 수컷 반딧불이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숲 전체가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목격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누가 지휘하는 것도 아닌데 빛들이 리듬을 맞추듯 동시에 깜빡이는 모습은, 작은 곤충 하나가 사람에게 이토록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했습니다. 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보기 드문 곤충입니다. 그 희귀한 생명이 수백 마리씩 어둠을 수놓는 장면, 그 밤은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반딧불이 서식 조건: 밤 기온 평균 20도 이상, 습도 80% 초과, 강수 없음
- 손전등으로 암컷 신호를 흉내 내 수컷을 유인하는 가이드의 기술
- 맹그로브 숲의 기수 환경이 반딧불이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조건
오랑우탄 재활센터, 보호와 공존의 의미를 묻다
동물원에서 유리 너머로 오랑우탄을 본 적 있으신가요? 세필록 정글 안에서 만난 오랑우탄은 그것과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센터(Sepilok Orangutan Rehabilitation Centre)는 전 세계에 단 네 곳밖에 없는 오랑우탄 재활 시설 중 하나입니다. 야생에서 다치거나 고아가 된 오랑우탄을 치료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이곳의 목적입니다. 방문객은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데, 오랑우탄이 인간과 유전자 구조가 매우 유사하여 인간의 바이러스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랑우탄(orangutan)이란 말레이시아어로 '숲의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처럼 이들은 인간과 가장 닮은 영장류로, 한때 애완용으로 포획되는 경우가 많아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먹이를 주는 시간은 오전 10시와 오후 3시, 두 차례뿐입니다. 그 시간에 맞춰 오랑우탄이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동물이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기부와 입양이라는 방식으로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입양이란 오랑우탄과 결연을 맺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프로그램으로, 실제로 데려가는 개념이 아닙니다.
센터 인근에서는 코주부원숭이(Proboscis monkey)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코주부원숭이란 보르네오섬 고유종으로, 긴꼬리원숭이과에 속하지만 크고 두툼한 코가 특징인 독특한 영장류입니다. 수컷은 코가 클수록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진다고 하니, 자연의 기준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동물들을 가까이서 관찰하다 보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종일 뿐이라는 사실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마리마리 민속촌, 원시 부족의 지혜에서 찾은 질문
자연을 이렇게 오래 지켜온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을까요?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리마리 민속촌(Mari Mari Cultural Village)에 들어서는 순간, 그 질문에 조금씩 답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르네오섬에는 다양한 원시 부족이 살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령에서만 30여 개의 종족이 저마다 다른 풍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 중 동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부족들의 생활 방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룬구스족의 긴 집은 중앙 통로를 기준으로 공용 공간과 개인 공간으로 나뉘며, 한 건물 안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구조입니다. 과거에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집도 있었다고 하니, 공동체 중심의 삶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른 대나무와 잎을 이용해 불씨를 만드는 시범을 보면서, 제가 직접 지켜봤는데 마찰력만으로 불을 피우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 부족에서는 여성이 불을 피우지 못하면 결혼이 어렵다고 할 정도로, 불을 다루는 능력이 공동체 생존의 기본 역량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어진 무룻족의 전통 공연에서는 칼과 방패를 들고 추는 전사의 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전사를 환영하는 망구나티(Magunatip) 댄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망구나티란 대나무를 바닥에 놓고 그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전통 춤으로, 속도가 빨라질수록 순발력이 요구되는 퍼포먼스입니다.
가믈란(Gamelan)이라는 전통 합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믈란이란 동남아시아 전통 타악 합주 형식으로, 쿨린탕이라는 금속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 형태입니다. 화려한 악기 소리와 리듬감 있는 춤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보며, 이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예술을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해 온 방식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느꼈습니다.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살아온 삶, 그것이 이 민속촌 전체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메시지였습니다. 출처: 말레이시아 관광청
자주 묻는 질문
Q. 코타키나발루 반딧불이 투어, 아무 때나 가도 볼 수 있나요?
A. 반딧불이는 밤 기온 20도 이상, 습도 80% 초과,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코타키나발루는 연중 덥고 습한 기후라 투어 자체는 연중 운영되지만, 당일 날씨와 조건에 따라 관찰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기보다는 건기(3월~9월)에 가는 편이 조건이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Q.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센터는 언제 방문해야 오랑우탄을 볼 수 있나요?
A. 먹이를 주는 시간인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맞춰 방문해야 오랑우탄을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야생 재활 과정에 있는 개체들이라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먹이 시간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방문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입니다.
Q. 탄중아루 해변 석양, 몇 시쯤 가야 하나요?
A. 코타키나발루의 일몰 시각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30분 사이입니다. 일몰 30분~1시간 전에 자리를 잡는 것이 여유롭게 석양을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해변에서 간식을 파는 노점도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Q. 마리마리 민속촌은 혼자 가도 체험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개인 방문객도 입장 후 가이드 투어 형식으로 진행되므로 혼자 가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 해설이 기본 제공되며, 불 피우기 시연이나 전통 공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모두 참여 가능합니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입니다.
결론
코타키나발루는 '쉬러 가는 곳'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쉼은 리조트 수영장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탄중아루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멈춰 선 순간, 맹그로브 숲에서 반딧불이가 일제히 빛을 내뿜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오랑우탄과 눈이 마주쳤던 그 짧은 순간들이 모여 진짜 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보르네오의 자연은 관광을 위해 배치된 배경이 아닙니다. 출처: IUCN 적색목록에 따르면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으로 분류되어 있을 만큼, 이 자연은 지금도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자로서도 환경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야생동물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재활센터 같은 보호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코타키나발루가 궁금하다면 석양 하나만 보고 돌아오지 마십시오. 강을 타고 맹그로브 숲 안으로 들어가 보시고, 오전 10시 세필록의 먹이 시간에 맞춰 서 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이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 무엇인지, 직접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